예전에 살던 하남 집 근처에서는 지렁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특히 여름, 비가 온 다음 날 아침이면 길 잃은 지렁이들이 인도 위를 꿈틀대며 기어다니고들 했다. 발 디딜 곳을 찾아 겅중대야 할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올 때 보면 한낮의 뜨거운 햇빛 아래 땅바닥에 말라붙은 녀석들도 부지기수였다. 매해 장마철에 벌어지는 비극이었다. 한낱 지렁이지만 가여웠다. 그래도 훗날 내가 지렁이를 키울 궁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왜 지렁이 생각이 났느냐... 베란다의 상자텃밭 아이들이 요즘 심드렁해서 퇴비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렁이 분변토가 참 좋다는 걸 알게 됐다. 분변토란, 지렁이 똥이다. 화학비료보다, 발효가 덜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반퇴비보다 안전하게 영양을 공급할 수 있다. 꼭 지렁이를 키우지 않아도 분변토를 인터넷으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서 지렁이를 키울 때의 좋은 점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배설한 분변토로 야채들에 영양을 공급한다.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에 담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보다 훨씬 뿌듯한 일일 것이고...
서울 도시농업박람회에서 갔다가 지렁이를 분양 받았다. 지렁이를 키워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동작구 도시농부 동호회 '도시에서 순환하기' 부스에서 지렁이를 분양하는 것을 보고 냉큼 신청했다.
<서울 도시농업박람회장에서>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에 흙만 담겨 있는 것 같지만... 이 안에 10마리 이상의 지렁이가 담겨 있다고 했다.
집에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지렁이의 모양을 갖춘 작은 지렁이가 보인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작은... 마치 흰 실밥처럼 보이는 어린 지렁이들도 보인다. 처음 볼 땐 징그럽게 느껴져도 이것들이 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해 줄거라고 생각하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새끼 지렁이>
<하늘색: 하얀 실처럼 보이는 게 새끼 지렁이
빨간색: 좀 더 큰 지렁이의 일부>
지렁이 키우는 방법은 '세경팜'이라는 지렁이 농장에서 자세히 정리해 두신 것을 참고했다.
(세경팜 : http://www.skworm.co.kr/)
내가 간단하게 정리해 본 것은 다음과 같다.
1. 지렁이가 살 집을 준비한다. (적당한 크기의 스티로폼 상자에 바닥에는 수분 구멍, 위에는 숨 구멍 뚫어 쓰기)
2. 흙과 지렁이를 준비한다.
3. 음식물 쓰레기(지렁이가 먹을 수 있을 법한 것들)을 수분을 적당히 짠 뒤 넣어주고 흙을 덮어준다.
4. 공기가 통하게 하고, 흙을 촉촉하게 유지, 온도가 40도 이상으로 높거나 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관리한다.
<구멍 뚫은 스티로폼 상자>
<망을 깔아준다>
<마사토를 바닥에 깔아주고, 상토로 채운다>
<음식물이 들어갈 공간을 생각해서 적절히 채워준다>
<지렁이 투입!>
<음식물을 한켠에 넣어준 모습>
주로 과일, 채소를 다듬고 생긴 음식물 쓰레기를 주면 된다. 지렁이의 건강을 생각하면, 농약을 별로 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잘게 잘라주면 더욱 좋다. 커피찌꺼기와 달갈 껍질 잘게 부순 것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부패되어 파리를 불러모으는 육류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이사하느라 충격받았을 지렁이들이 어서 회복하여 음식물을 먹고 배변도 번식도 잘~ 하고 행복하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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